'아이를 갖지 않는 것'을 선택한 기혼 여성에 대한 익명 인터뷰 연재 '엄마가 되지 않는 우리들'. 그 결정을 내린 이유, 남편과의 관계, 지금의 심경 등 익명이기에 말할 수 있는 진심은 무엇일까요?
결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여성에게 선택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에 고민이 많아진 시대입니다. 이번 연재에서는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한 기혼 여성을 대상으로 익명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왜 아이를 갖지 않기로 선택했나요?” “파트너와 어떻게 상의했나요?” “솔직히 후회하지 않나요?” 등 얼굴을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는 속마음까지 파헤쳐 보겠습니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웹디렉터인 A씨 (가명, 56세)는 40대에 결혼한 동갑내기 남편과 둘이서 살고 있습니다.
장 여성으로 즐기며 현재도 일과 연애를 자유롭게 즐기고 있는 A 씨. 아이 없는 삶을 살게 된 데에는 일과 결혼에 따른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목차
1. 링거를 맞으며 커리어를 쌓아오던 젊은 시절
저는 현재 프리랜서 웹디렉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직종을 경험했습니다.
처음에는 사무직으로 커리어를 시작했는데, 몇 번의 이직을 거치면서 30살에 IT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휴대폰이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이른바 IT 버블의 시기에 열정적이고 우수한 젊은이들이 모여 치열하게 일하는 세계는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처음에는 IT업계에 대해 잘 몰랐고, 상사가 20대 초반의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던 탓에 '아줌마' 취급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30살이면 아직 젊은 편에 속하지만, 당시에는 그런 취급을 받았어요.
많이 서운했지만, 당시 IT 업계가 경기가 좋아서 월급은 많이 받았어요. 입금된 상여금 액수를 보고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서부터 맹렬하게 일했어요. 차츰 일을 익히면서 팀장을 맡길 정도로 신뢰를 받게 됐어요. 아마 일하는 것을 좋아해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도 엄청난 업무량이었어요. 심할 때는 점심시간에 병원에 가서 링거 맞고 다시 회사로 돌아와서 일하는 식이었어요.
직원들은 모두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한 위궤양은 기본. 저도 의사 선생님이 '일을 쉬고 주무시라'고 했지만, 쉬면 직장에서 '못난 놈'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너무 싫어서 결국 매일 24시가 넘도록 일을 했어요.
그래도 역시 일은 재미있었고, 스스로 여러 가지 궁리를 하면서 벽을 넘나드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2. 매주 여행은 기본! 풍요로웠던 고도 성장 시대
30대 때는 치열하게 일하면서도 치열하게 놀기도 했어요. 같은 직장인이었던 여성 친구 함께 주말마다 국내 전역을 여행하며 그 지역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놀았습니다. 많이 벌어서 많이 쓰는, 고도 성정 시기다운 놀이 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연인과 데이트하는 타입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번 돈으로 자유롭게 놀고 놀았습니다. 결혼해서 육아를 하고 있었다면 절대 할 수 없는 놀이였을 텐데, 정말 즐거웠어요.
그때는 결혼을 전혀 현실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생각하고, 주말에는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고, 그런 30대였어요.
3. 25세까지 결혼, 30세까지 출산이 당연시되던 시절
한편, 당시 세간에는 여자는 25세까지 결혼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25세가 넘어가면 어머니의 '중매를 서라'는 압박이 엄청났고, '적어도 30세까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라'는 압박이 있었습니다.
많은 소개팅을 시켜주셨지만, 연상의 남자들만 만나서 마음에 드는 사람도 없었고, 저는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중매에 대해 시끄럽게 말씀하시던 어머니도 제가 35세가 넘을 무렵부터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어요. 출산 적령기를 넘겼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아이를 낳기에는 늦었으니 결혼도 무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식이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교사였고, 그 시대 여성으로서는 상당히 직장인이었죠. 아버지는 외근이었고, 어머니도 일 때문에 집을 비울 때가 많아서 저는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거의 남의 집에 맡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어머니는 '여자도 스스로 일해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육아보다 자신의 일을 우선시하셨고, 성인이 된 제가 열심히 일하게 된 것을 기뻐하셨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30세까지 결혼과 출산을 하라'고 말씀하셨으니, 어머니도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저 자신도 어렴풋이 '언젠가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지'라고 생각했고, 사귀는 사람이 있는 시기도 있었어요. 그래도 역시 결혼과 출산에 대한 현실성이 느껴지지 않았고, 내 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주변에는 바쁘게 일하는 독신자나 아이 없는 남녀가 많았기 때문에 특별히 조급해하지도 않았어요.
그런 마음으로 40살까지 지내다가 그때 오래 사귀었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어요. 만남은 직장이에요. 제가 프리랜서가 되는 시점에 동거 이야기가 나왔고, 그럼 결혼을 할까 싶었어요.
남편은 웹 마케터였는데, 직장에서의 일처리가 믿음직스럽다는 점에 끌려서 사귀게 됐어요. 지금은 남편도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지만, 비슷한 업종에 종사하다 보니 업무 상담도 잘해주고 다정다감한 점이 마음에 들어요.
4. 결혼과 몸의 불편함, 그리고 폐경까지
저와 남편 모두 '결혼하면 아이를 낳는구나'라는 생각을 어느 정도 하고 있었는데, 그보다 먼저 몸이 안 좋아졌어요.
결혼하기 조금 전부터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몸이 본격적으로 나빠지기 시작해서 결혼을 계기로 일을 줄였어요. 과로한 탓도 있었고, 갱년기 같은 증상이 일찍 찾아온 것도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몸이 안 좋아지는 일이 많아지고, 전철을 타면 술에 취해 메스꺼움을 느끼고,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까지 발견되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 상태였어요.
병원도 여기저기 다녔는데 '대증요법으로 경과를 지켜보자'는 의사도 있고, '수술해서 근종을 제거하고 임신을 원한다면 체외수정을 하자'는 의사도 있었어요. '체외수정'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처음으로 '내가 아이를 임신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현실을 알게 됐어요.
불임 치료를 열심히 하면 가능성은 0이 아닐 수도 있었지만, 주변에는 힘든 불임 치료로 인해 마음이 아픈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할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남편도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 타이밍에 '아이는 갖지 말자'고 결심했어요.
그동안 결혼도 출산도 현실성이 없는 것으로 살아왔는데, 갑자기 '임신이 어렵다'는 현실을 목격한 기분이라 충격이 컸어요.
그런 일이 있은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뜻하지 않게 찾아온 '폐경'이 찾아왔습니다.
(후편으로 이어집니다)
직면한 '임신은 어렵다'는 현실과 예상치 못하게 맞이한 폐경. A 씨의 마음에 일어난 변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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